조선일보 [남정욱의 영화 & 역사]
2020. 11. 26
1948년 4월의 제주도는 심지가 타들어가는 폭탄이었다.
4월 17일 진압 작전을 명령받은 국방경비대 김익렬 중령은 토벌 직전 반란군과 협상을 시도한다. 동족상잔을 확대하지 말고 대화로 풀어보자는 전단이 뿌려졌고 4월 28일 김익렬은 남로당 제주총책인 이승진(가명 김달삼)과 마주 앉는다.
이승진은 일본군 소위 출신으로 제주도 군사부장까지 겸직하고 있던 인물이다. 양측의 전투 행위 금지, 반란군의 무장 해제까지는 수월하게 대화가 진행됐다. 그러나 책임자 명단을 넘기라는 요구에서 이승진은 예민해진다. 결국 우리를 다 잡아 죽이겠다는 수작 아니냐. 김익렬은 자신은 직무상 반란군 책임자를 색출할 의무가 있으며 대신 자수하든 도망치든 그건 자유 의지에 맡기겠노라 약속한다.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는 이승진에게 김익렬은 자신의 아내와 6개월 된 아들을 인질로 내준다.
협상 내용을 듣고 길길이 날뛴 것이 미군정 경무부장이던 조병옥이다. 무조건 토벌을 주장하던 그는 협상을 엎어 버렸다. 김익렬 회고록에 따르면 둘 사이에 주먹질까지 오갔다고 하니 당시 험악했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 조병옥이 핵심 인사였던 당이 지금 집권 여당의 뿌리 격인 한국 민주당이다. 해마다 4·3 추념식 앞자리에 앉아 제주도의 한이라도 풀어준 듯 표정을 짓고 있는 그 당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남정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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