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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없는 사회 <문화일보, 오후여담>

산넘고 물건너 2019. 5. 31. 06:32

'사과' 없는 사회 - '사과(沙果)와 사과(謝過)'

[문화일보, 오후여담] ]2019. 05. 30()

 

 

새큼달큼 맛난 사과는 처음부터 오늘의 크기였던 게 아니다. 상업용으로 개량하기를 거듭한 결과다. 원산지가 유럽 남동부와 아시아 서부 지역으로 알려진 사과를 인류는 1만 년도 넘게 먹어 왔다. 다만, 재배하기 시작한 건 2000년 남짓하다.

 

사과의 진화 과정과 전파 경로 등과 관련한 학계 보고서가 최근 언론에 보도됐다.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역사과학연구소의 로베르트 슈펭글러 박사 연구팀에 따르면, 사과는 여느 장미과 나무들과는 다른 진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체리나 라즈베리는 널리 종 번식이 되기를 바란 나머지 새들의 먹이가 되기 위해 열매를 작게 유지했다. 하지만 사과는 곰·사슴·말 같은 대형 동물들이 먹고 씨를 퍼뜨려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수백만 년에 걸쳐 그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지구의 빙하기 이후 사과는 인간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그 맛을 본 사람들은 접붙이기와 가지치기 등을 통해 크기를 더 키우고 입맛에 맞는 품종으로 개량했다. 그 결과 오늘의 사과가 탄생했고,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 그리고 한반도로 들어왔다.

 

개량종 사과가 우리 땅에 들어온 명문 연도는 조선조 효종 6(1655) 3월이다. 인조의 셋째아들 인평대군이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올 때 사과나무를 가지고 와 심었다는 유초환의 '남강만록' 등 옛 문헌의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중국은 서역과의 물물교환 과정에서 사과가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보다 그 시기가 훨씬 앞설 뿐 아니라, 식문화 밖의 문화도 생겨났다. 중국인들은 사과를 선물로 받으면 매우 고맙게 여긴다. 이유가 있다. 맛도 맛이지만, 해음(諧音) 문화의 영향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발음이 같거나 닮은 글자를 차용해 그림이나 상징으로 표현하곤 하는데, 이를 해음이라고 한다. 중국어로 사과는 핑궈(苹)인데, '핑'이 평안을 의미하는 핑()과 음이 같다. 그래서 '사과 = 평안'으로 이해한다.

이런 사과의 해음자는 우리말에도 적용할 수 있다. '사과(沙果) = 사과(謝過)', 발음의 장단과 한자는 다르지만, 뜻은 같은 동음이의어이다.

 

사과의 진화·전파에 관한 연구 논문이 우리 사회의 인색한 '사과' 문화를 돌아보게 한다. 사과해야 할 사람도 많고 받아야 할 사람도 많은데, 정작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과하지 않는 사람도 사과 먹을 자격이 있을까. <황성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