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을
- 김현승(1913 ~1975)
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
꽃잎을 이겨
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
별을 생각으로 깎고 다듬어
가을은
내 마음의 보석을 만든다.
눈동자 먼 봄이라면
입술을 다문 가을
봄은 언어 가운데서
네 노래를 고르더니
가을은 네 노래를 헤치고
내 언어의 뼈마디를
이 고요한 밤에 고른다.
가을을 유난히 좋아했던 크리스챤 시인 김현승님의 '가을'이다.
장로교 목사인 아버지(金昶國)의 차남으로 평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목회지를 따라 제주에서
유년(1917~1922)을 보냈다. 가난한 제주의 봄은 화사하였고, 보라짚 마당은 휘젖는 가을 찬바람은
한없이 스산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