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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해외여행의 어제와 오늘

산넘고 물건너 2017. 8. 4. 22:27

해외여행의 금석(今昔)
문화일보 [오후여담]  2017. 8. 4(金)


 외국 여행은 40세 이상이어야 가능했다. 1년에 2회 이상은 출국할 수 없었다. 1인당 5000달러 이상을 쓰면 제재를 받았다. 공무 등의 목적에 한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제한적으로 여권이 발급되던 사실상 '해외여행 허가제'였다. 이렇게 어렵게 출국하니, 귀국할 때는 직장 동료와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수십 개 준비해야 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 이전 얘기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해외여행은 꿈 같은 일이었다. 혹 출장을 가거나, 국비 연수라도 떠나게 되면 여의도 비행장에 친지와 회사 동료들이 나와 꽃다발을 걸어주며 배웅하곤 했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들로 인천국제공항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경제가 어렵다는 데도 사상 최고 기록을 매년 경신하고 있다.

외국인들의 한국 관광은 그 반대다. 중국의 사드 보복 탓이 크지만, 외국인 관광객의 입국이 현저히 줄고 있다. 올 들어 6월까지 외국인 관광객은 전년 대비 16.7% 감소한 675만 명인 데 반해, 해외여행 출국은 18.7% 증가한 1262만 명이다. 외국인의 국내 여행과 내국인의 국외 여행 불균형이 급속히 커지는 것은 여행 수지를 비롯해 여러 측면에서 문제다. 상반기 여행수지 적자는 77억4000만 달러로 사상 두 번째로 많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교통·숙박시설 등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 외국인들은 바가지요금에다 불친절하고, 외국어 관광 가이드 부족도 문제라고 푸념한다. 다시 오고 싶지 않다는 외국인이 많다. 한국 사람들은 국민소득이 올라서 자연적으로 수요가 늘어난 것도 이유지만, 휴가지의 바가지 상혼 탓에 외국으로 발길을 돌린다.


정부가 내수시장 활성화를 위해 오는 10월 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할 것으로 보여 10일간 초유의 황금연휴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주변 지인 중에는 해외로 나가려는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입시생 자녀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 10년 만의 가족여행을 다음 주 떠나는 한 지인이 국내 여행의 고초를 토로했다. 처음엔 제주도로 가려 했지만, 성수기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포기했다. 차선으로 남해안을 정했지만 거기 또한 숙박요금이 평소보다 두 배로 껑충 뛰었다. 식사비 등 부대비용도 비싸다고 했다.

결국 돈을 좀 더 보태 해외로 나가는 것으로 정했다. 국내 관광이 힘들어 외국 가는 시대가 됐다.

(박현수 조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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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 더 싸다니

조선일보 2017. 8. 12(토)


여름휴가 때 일본 하코다테(函館)에 다녀왔다. 홍콩·나폴리와 함께 '세계 3'로 꼽힌다는 하코다테 야경을 보려고 전망대로 가는 케이블카를 탔다. 고도가 올라가며 유리창 너머로 시내 전망이 한눈에 들어오자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다. ", 예쁘다!" 한국말이 들려 돌아보니 여고생 둘이 야경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었다. "가족들 없이 둘이서만 온 거냐"고 물어보니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해 모은 돈으로 왔다"고 했다.

고등학생도 자기 힘으로 돈 벌어 일본에 여행 올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놀라움은 곧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하코다테의 명물 햄버거집 '러키 피에로'에서 햄버거와 우롱차 1, 그리고 머그컵에 가득 담긴 감자튀김이 나오는 세트 메뉴 가격은 약 6,600(650)이었다. 영화 '러브레터' 배경이 된 하치만자카 언덕, 일본 최초의 서양식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고료카쿠공원 등 하코다테의 명소를 도는 시내 트램은 600엔짜리 표를 사면 온종일 무제한으로 타고 내릴 수 있다.

식비·교통비와 쇼핑 경비 등으로 하루 1만엔 정도는 들 거라 예상했는데 호텔에 돌아오면 늘 돈이 남아 있었다. 30만원쯤 하는 저비용 항공사의 왕복 비행기표 값과 숙박비까지 합쳐도 34일 여행에 들인 돈은 100만원 남짓이었다.

 

단지 싸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하루 11만원 주고 묵은 3성급 호텔에선 직원이 여권을 확인하더니 한국말로 "하코다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하고 인사를 건넸다. 가방도 방까지 들어서 옮겨줬다.

동네 작은 선술집에서도 "간코쿠(한국)"라고 말하면 한국어로 된 메뉴판을 줬다. 관광객에 대한 의례적 친절일 수도 있지만, '적은 돈 쓰고도 대접받는다'는 생각이 여행 내내 들었다.

 

최근 국내 여행과 해외여행 물가를 비교하는 기사를 쓰면서 주변 여러 지인에게 '여행담'을 청했다. 국내 여행을 다녀온 지인들이 공통으로 입에 올리는 말은 "돈 쓰고도 기분 나빴다"는 것이었다.

지난달 속초를 다녀온 한 친구는 "둘이서 먹을 10만원짜리 회를 시켰는데 천사채만 한 가득이고 회는 몇 점뿐이었다""주인에게 따지니 '주변 다른 식당도 다 똑같이 판다'"며 되레 화를 냈다고 했다. 지난 주말 부산에 간 또 다른 친구는 "몇 달 전 15만원 주고 묵은 숙소가 성수기라고 딱 두 배인 30만원을 달라더라."고 했다. 휴가철 '바가지요금''자릿세'나 튜브·파라솔 등을 빌리는 각종 '대여료'를 덤으로 내고 나면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사람이 많다.

 

열심히 일한 만큼 잘 쉬고 싶다는 욕구는 갈수록 커지는데, 국내 관광지는 여전히 '한철 장사'에만 골몰하고 있다. 그사이 경쟁적으로 값을 낮추는 저비용 항공사, 예약 대행 사이트에서 10분이면 끝나는 해외 호텔 예약, 한국보다 저렴해진 물가까지. 해외여행 문턱은 날로 낮아지고 있다.(양승주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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