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산/대중교통 산행 서울•경기

용인, 건지산 - 수정산

산넘고 물건너 2017. 1. 10. 20:02

                                                                               ▲미평리에서 바라보는 건지산. 방건을 닮았다. 

건지산(435m) - 수정산(348m)/용인

2017.  1. 10(화)

친구와 둘이


허씨 5문장이라 하면 곧  허균과 그의 아버지 허엽, 형인 성과 봉, 그리고 누나 난설헌 등 다섯을 이른다.

우리 선조이기도 한 이분들의 흔적을 찾아 용인 건지산으로 간다. 


지산은  나지막하지만 산세는 가파르고 숲이 무성하다. 산 모양이 방건과 닮았다고 건지산(巾之山)이다.  산 북쪽 기슭에 자산골프장을 끼고 있다.

산 남쪽으로는 수정산(水晶山)이 이어진다. 수정이 났다는 산이다. 수정산 서쪽 맹골마을에 허균 일가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오늘 산행은 허균의 묘역을 둘러보고 수정산과 건지산을 오른다.

 

<미평1리 - 허균 묘 - 맹4리마을회관 - 수정산 - 복고개 - 건지산 - 지산골프장(9.0km)>


[갈 때] 분당 오리역⑦ [820]번 버스 -(1시간)- 용인터미널/[10]번 버스 환승 -(30분)- 미평1리 하차

           *백암~용인~수원을 잇는 [10]번 버스는 1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갈 때] 지산골프장 [10]번 버스 - 용인시장/[68]번 버스 환승 - 죽전 신세계 - 분당  



허균의 가족 묘

  용인시 처인구 맹골마을(원삼면 맹리 639-3)


 허균 가족묘역


허균은 선조 2년(1569) 강릉 외가에서 초당 허엽(許燁)과 둘째부인 사이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교산.  그가 태어난 강릉의 야트막한 산 이름이다. 교(蛟)는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를 말하는데 산이 꾸불꾸불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그는 끝내 홍길동을 통해 꿈꾸었던 용이 되지 못하고 이무기로 끝나고 말았다. 

그의 집안은 당대 최고 명문가였다. 부친 허엽(陽川許씨 20세손)은 대사헌 등을 지낸 문인이요 학자요 정치가였다. 허균의 이복형 허성은 이조와 병조판서를 역임하였고, 동복 형 허봉은 학문이 상당한 수준에 달하였다. 허난설헌은 그의 동복 누이다. 

 

허균은 5세 때부터 형들의 어깨 너머로 글을 익히고 9세 때부터 시를 지었다. 12세에 부친을 잃고 어머니와 누나 난설헌과 함께 서울에 살면서 유성룡과 이달에게서 학문을 익혔다.

선조 27년(1594) 벼슬 길에 나아갔으나 재주가 뛰어나고 자존심이 강하여 소인배들의 시기와 모략이 잇달았다. 파면과 사직을 거듭하던 그는 광해군 10년 역모의 누명을 쓰고 생을 마감한다.

  

¶미평리버스정류소에서 국도 밑 굴다리를 통과하여 500m쯤 올라가면 좌측에 [천봉기념비(遷奉記念碑)]가 나타난다. 고속도로 건설로 1968년 서울에서 이곳으로 이장해 온 <허균 묘>에 이른 것이다.


양천허씨 초당공 종회 묘역 초당공 허엽 신도비. 

허균의 아버지 허엽은 서경덕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으며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선조 때는 동인의 영수가 되어 조광조의 억울함을 논하다가 파직되기도 했다.


허엽신도비는 1582(선조15) 건립, 노수신이 찬하고 한석봉이 썼다.

'내가 유배지 진도에서 돌아와 보니 우리 무리들은 다 죽고 우리 허공만이 처음이나 다름없이 살아 있었는데

 겨우 13년 만에 갑자기 이승을 떠나 나에게 끝없는 슬픔을 주었다. 지금 그의 두 아들이 가장(家狀)을 가지

 고 와서 내보이며 비명을 부탁하였다. 아! 공의 자취는 비명에 새겨 본받을 만하도다. 의리상 사양할 수 없

 지만 어찌 차마 말하겠는가. 삼가 살펴보니 허씨는 김수로왕비의 성이다. 시조 허선문(許宣文)은 고려 태조

 를 도와 삼한(三韓)을 안정시킨 공로로 양천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드디어 대대로 양천사람이 되었다. ...'

(출처: 국역국조인물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네이버)


신도비 뒤에는 난설헌 허 초희 시비도 있다.  1969 국어국문학회에서 세운 것이다.

허난설헌의 묘는 경기도 광주 지월리에 있다.

신도비를 기준으로 우측 제일 상단에는 허엽의 묘가 있고 신도비 뒤 묘역 안에 혀균 형제들의 묘가 있다.


아버지 허엽의 묘

묘비는 중간이 부러진 것을 붙여 놓았다. 아들 허균이 역모로 능지처참되었을 때 아버지 묘까지 화를 당한 흔적이다. 묘비에 허균의 이름도 지워져 있다.

    

허균과 그의 형제들의 묘역

허엽의 묘 서편 묘역 바로 가까이에 허균의 묘가 있다. 허균의 옆에는 둘째형 허봉(篈)이, 허봉의 옆에는 맏형 허성(筬)이 누워있다. 대역죄의 혐의를 쓴 허균의 묘는 가묘이다.


묘역 서쪽 끝 뒤에는 양천허씨 시조 선문(宣文)공을 기리는 단도 마련되어 있다. 그는 가락국 김수로왕의 30세손이다. 한편 허균은 양천허씨 21세손이다.


▒ ▒ ▒


<허균 묘>에서 300m를 더 가면 양천허씨 초당공종회 재실 「상고재」와 「맹4리마을회관」이 나온다. 

이 일대 문패는 모두  「허씨」들이다.


마을회관에서 100m 직진한 갈림3거리에서 오른쪽 농장쪽으로 들어간다.


30여m 들어가서


오른쪽 비닐하우스 농장 둑을 따라 산으로 붙는다.


500m 쯤 오르면 남쪽 가좌리쪽에서 오르는 주등산로를 만나며, 능산로는 넓어진다.


우리는 수정사 방향에서 올라왔다.



동네 주민을 위한 운동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소바위

옛날 한 도사가 수정산 정상에 조그만 움막에 기거하며 천문과 지리, 도술을 공부하였다. 그는 큰 바위에 올라 직경이 4척이나 되는 둥근 바윗돌을 가지고 공기놀이로 소일하였다. 어느 날 큰 폭풍우를 동반한 뇌성병력과 함께 그의 종적이 사라져 버렸다. 그가 놀던 하던 바위 위에는 상여색채의 빛이 서려 있었다. 사람들은 도사가 승천하고 인간세계에 흔적을 남긴 것이라 여겼다.(동아일보 1932. 9.22<전설>)


수정산 소바위에서 바라본 건지산


수정산 소바위에서 바라본 맹리 들녁

'맹골'은 막힌 골짜기를 이르는 막은골 → 망골이 다시 변음된 지명이다.  '미평리(彌坪里)'는 마을 가운데 미륵불상이 있어 이름 지어진 ‘미륵들판’의 한자 이름이다.


수정산



수정산 348m. 거창한 표지석보다 훨씬 이 산에 어울리며 운치가 있다.


*요주의사항: 건지산을 바라보며 무작정 '맹리' 방향으로 내려갔다가는 복고개에서 헤메게 된다. 우리가

                  그랬다. 가창리 방향이 정답이다.


복고개

용인 땅 맹리와 이천 땅 가창리를 걸어 잇던 고개마루이다.


고개는 수정산과 건지산의 경계를 이룬다.


우리가 올라가고 있는 방향의 건지산 정상. 오른쪽이 남봉이다.


남봉



소나무 밑 외진 곳에 「건지산 해발 435m 」 팻말이 세워져 있다.


쌍둥이바위


건지산 중간봉


이 중간봉에서 이천 해월리 지산스키장과 LG인화원쪽으로 하산할 수 있다.


건지산 정상



나무가지에 「건지산 해발 410.9m 」 팻말이 걸려있다.



건지산 정상에서 북쪽 가파른 능선을 내려오면 지산스키장이다.

 

스키장에서 길이 끊기고 스키장 철망 밖은 가시덤불이다. 허망하여 망설이고 있는데 친절한 스키장 요원이

경계철조망 안쪽을 따라 2~30m만 내려가면 골프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고 안내해주었다. 직원은 아니고 아르바이트 안전요원인 듯하였다.


지산골프장 클럽하우스. 휴장기인 듯 차량통행이 많지않았다.


지산골프장 입구

아침에 우리가 지나갔던  17번 도로이다. 오른쪽으로 150m쯤 걸어가 '도창'버스정류장에서 [10]번 버스를 타고 용인으로 나왔다.


*두 산 모두 나지막한 산이다. 오늘 산행거리도 골프장 도로 약 1.5km를 감안하면 두 산을 연계하여도

 산행거리는 7.5km에 불과하다. 하지만 복고개에서 건지산 등로는 줄기차게 가파르다.  

 오늘도 용인에 가면 늘 들르는 용인시장 순대골목 '백암순대'에서 토종순대뒷풀이로 산행일정을 마쳤다.


▒ ▒ ▒


꿈속 노닌 광상산                        夢遊廣桑山(몽유광상산)    (廣桑山 신선이 사는 환상의 산)

                      - 허난설헌

                                                 

푸른 바다 옥빛 바다 넘나들고       碧海海(벽해침요해)     (아름다운 옥 요)
푸른 난새 채색 난새 어울리네       鸞(청란의채란)     (전설의 새  란)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朶(부용삼구타)     (늘어질 타)
붉은 꽃 지고 달빛에 서리가 차다   寒(홍타월상한)     (떨어질 타)


*난설헌은 27세로 죽기까지 방 하나에 꽉 찰만큼 수많은 시를 썼다. 그러나 그의 유언에 따라  모두

 불살라져 버리고 동생 균이 모아 두었던 것이 오늘까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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