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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제주 4·3 추념식에 참석할 수 있으려면[조선일보/사설]

산넘고 물건너 2015. 4. 3. 06:19

대통령이 제주 4·3 추념식에 참석할 수 있으려면

[조선일보 2015. 4. 3/사설]

 

오늘 제주도 4·3 평화공원에서 지난해 3월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다. 박근혜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는 대신 이완구 국무총리와 여야 대표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 60년 넘게 민간단체가 주관해 온 4·3 행사를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겠다고 공약했고, 취임 후 그 약속을 지켰다. 그런 박 대통령이 4·3 추념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제주 평화공원에 모셔진 위패(位牌) 중에 남로당 무장 반란을 주도하고 군·경과 그 가족을 살해한 골수 좌익 인사들도 포함돼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4·3 사건은 남로당 제주도당이 대한민국 건국을 막으려고 1948년 4월 3일 무장 반란을 일으키면서 시작돼 1954년 9월 21일까지 이어졌다. 이 사태로 당시 제주도민 6만여 명 가운데 1만5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제주 평화공원에는 현재 위패 1만4095기가 안치돼 있다.

'제주 4·3 정립연구·유족회'는 이 중 부적격자 53명이 포함돼 있다며 이들을 희생자 명단에서 빼고 위패도 없애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 단체가 문제 삼은 53명 중에는 실제 남로당 제주도당 부위원장과 경리부장, 현지 인민군 사령관 등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1948년 10월에 월북, 6·25전쟁 당시 인민군 7000여 명을 이끌고 남침한 인물의 위패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재판소는 2001년 4·3 관련 위헌소송에서 남로당 제주도당 핵심 간부와 무장대의 수괴급과 중간 간부, 군·경 및 선거 공무원과 그 가족을 살해한 자, 관공서와 공공시설 방화자 등은 4·3 사건 희생자로 볼 수 없다고 명시했다. 문제가 된 53명의 전력이 사실이라면 이들은 4·3 희생자에서 뺄 수밖에 없다.

 

부적격자 논란만 나오는 게 아니다. 제주 출신 소설가 현길언 전 한양대 교수는 엊그제 "4월 3일은 남로당이 (대한민국 첫 선거인) 5·10 총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일으킨 무장봉기 날"이라며 "이날을 기념하는 것은 무장봉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3사건이 마무리된 9월 21일을 추도일로 잡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고 했다.

4·3 당시 아홉 살이었던 현 전 교수는 할머니와 삼촌 등이 이때 화를 입은 피해 당사자이고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발표해 왔다. 현 전 교수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희생자 추념이 아니라 무장 반란을 기념하자는 국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추모 행사를 주관하는 '4·3 위원회'에 부적격 논란을 빚은 53명에 대한 재심의를 요청했지만 1년째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위원회 내부 보수·진보 인사 간 견해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추념식 참석은 이 논란이 바른 방향으로 정리된 다음에 가능한 문제다. 분명한 것은 추념식이 또 다른 갈등과 분란이 아니라 진정한 추모와 해원(解寃)의 장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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