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세시풍속]
손 없는 날 '신구간'
흔히 제주에는 무려 18,000의 신들이 있다고 한다. 제주사람들은 특정한 사물이나 곳곳에 신이 있다고
믿었다. 집 안에도 마당이나 부억, 안방, 거실, 통시(변소) 등 곳곳마다 고유의 역할을 맡은 신들이 있다.
제주의 척박한 땅 모진 자연환경에서 온갖 고난과 불행을 겪으면서 이를 신의 노여움으로 믿었던 것이다.
이들 신들은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지상으로 내려와서 1년간씩 세상을 관리한다고 여겼다. 이 신들은 새해가 되면 임기가 끝나 하늘로 올라가 일년간의 실적을 보고하고, 다시 임명받아 부임한다고 믿었다.
이렇게 신들이 지상에 없는 공백기간이 신구간(新舊間)이다. 그 시기는 24절기 중 마지막 절기인 '대한' 후
5일부터 첫 번째 절기 '입춘' 전 3일까지 일주일간이다. 대한이 보통 양력 1월 20일 무렵이고, 입춘은 2월
4일경이므로 신구간은 양력 1월 하순에 해당된다.
모든 고난과 불행이 신들의 노여움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신들의 공백 기간에 평소에 금기되던 일들을 마음 놓고 해치워 버려야 했다. 그래서 이사를 비롯하여 집이나 묘자리 고치기, 이장(移葬) 비석 세우기 등이 이때에 집중적으로 이루어 진다.
이러한 세시풍속은 제주도로 이사하는 타 지방 사람들에게는 처음 직면하는 황당한 풍습이 된다. 제주에서는 월세나 전세는 거의 없고 일 년 치 임대료를 한꺼번에 내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신구간에 이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기간 외에는 집 구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사 관련 업체도 눈코 뜰 사
이없이 바빠져, 육지의 이사업체들이 대거 제주의 이사행렬에 동원된다.
이러한 ‘신구간 풍습’은 농경문화의 영향인 것으로 풀이된다. 시기를 24절기 가운데 한 해의 시작점에 맞춘 것도 그렇고, 또한 농한기에 해당하는 것도 그렇다. 농경사회에서 바쁜 농사철을 피할 수 있는 시기는 이 때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올해의 신구간은 1월 25일부터 2월 1일까지에 해당한다. 우리도 오늘(26일) 이 신구간 기간을 이용하여
멀리 떨어져 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묘소를 새로 마련된 가족묘역으로 이장하였다.
캄캄한 이른 새벽부터 파묘를 하여 이곳으로 온 후 이장을 하기 전 제사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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