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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에서의 기적(스크랩)

산넘고 물건너 2014. 8. 11. 06:38

[아침 편지]

"청계산 山行 중 죽을 목숨 살려낸 심장 전문의를 찾습니다."

2014. 8. 1 조선일보 <오피니언>

 

등산하다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진 사람을 때마침 지나가던 심장 전문의가 발견하고 응급처치를 하면서 헬기를 요청하고 인근 병원에 보내게 함으로써 죽을 사람을 살린 일을 소개한다. 아울러 경황이 없어 이름조차 여쭙지 못해 찾을 길 없는 그 고마운 의사 선생님을 찾고자 한다.

 

7월 13일 일요일 이른 아침, 동네 선배인 조민국(가명) 형은 밤새워 사업 아이템을 고민하다가 가까운 청계산에 뛰어 올라갔다. 원래 건강체이고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어서 청계산 정도는 쉽게 올라갔다 내려오곤 했다. 그런데 이날따라 몸이 무거웠다. 정상을 앞두고 갑자기 몸에 힘이 빠지고 왼쪽 가슴이 몹시 아프면서 쓰러졌다. 잠시 뒤 정상에서 내려오던 분이 보고 첫마디로 "담배 피웁니까?" 하더란다. 아니라고 겨우 말하니 "좋습니다. 한번 해봅시다" 하며 심장 마사지를 시작했고 이 형의 휴대폰으로 집에 연락해서 형의 생활습관을 묻고 식구를 안심시킨 뒤 119에 전화하여 헬기를 요청했다.

 

그런데 119에서 시간이 이르고 시계가 좋지 않다며 헬기는 불가하니 응급대원들을 올려보내겠다고 한 모양인데 이분이 "나는 의사인데 지금 바로 오지 않으면 이 사람은 죽는다. 내가 한 시간이 걸린다 해도 응급처치하며 기다릴 테니 반드시 헬기를 띄워라. 들것에 실어 내려가면 이 사람은 죽는다. 나는 분명히 헬기를 요청하는 이유를 알렸고 당국의 오판으로 이 사람이 죽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해 마침내 헬기가 떴다. 이분은 "헬기보다 구조대원들이 먼저 올라와야 하는데 대원들 편에 들것은 필요없으니 반드시 아스피린을 지참하라"는 지시도 했다.

 

형은 가슴이 극심하게 아픈데 이분의 심장 마사지도 엄청나게 아파서 한마디 말도 못하고 귀로만 상황을 듣고 있었다. 등산객 중 어떤 분이 자기는 안과 의사이니 돕겠다고 했는데 이분이 "저는 심장 전문의입니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분은 형의 입에 물을 계속 흘려 넣어주며 "지금부터 누가 물으면 다른 말 할 것 없이 '심근경색증', '심장발작' 두 마디만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형이 헬기에 타서 대원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을 때 지시대로 했더니 더 이상 질문이 없이 바로 조치가 됐다는 것이다. 만남의 광장에 내려서 대기하던 앰뷸런스로 인근 병원에 갔더니 그 심장 전문의가 미리 알려서 바로 이 형을 응급실로 보내고 즉시 조치하여 결론은 며칠 만에 퇴원하고 멀쩡히 살아서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다. 산꼭대기에서 쓰러진 심근경색증 환자가 며칠 만에 멀쩡하게 회복된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라고 한다.

 

이 심장 전문의가 대단한 것은 상황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전문지식으로 필요한 조치를 하였고 미리 일이 어떻게 될지를 알고 필요한 지시까지 다 해놓았다는 것이다. 형은 이 은인을 찾고 싶고 덕분에 잘 살아있음을 알리고 싶다고 한다. 아울러 추워서 덜덜 떠는 형을 위해 옷을 벗어주고, 발 마사지를 해주고, 생수를 산더미같이 쌓아주고, 혹시 저혈당인가 싶어 사탕을 쥐여주신 그때 등산객분들께도 고맙다는 말씀 꼭 전하고 싶다고 한다.(김병기 | 서울밸류투자자문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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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산 속 심근경색, 절체절명 순간  뒤따르던 등산객은 心臟전문의였다

2014. 8. 11 조선일보 

 

목숨 구한 조모씨, 恩人 만나

당시 119는 헬기 수송에 난색… 醫師 김씨가 "환자 위독" 설득

응급조치하며 기다리는 동안… 등산객 100여명도 "돕겠다" 나서

등산복·물통·사탕 산처럼 쌓여

 

지난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곡동 강남세브란스병원 1층 로비. 지난달 이곳 응급실에 실려와 심장 수술을 받았던 조민국(가명·43·금융회사 이사)씨가 저만치 걸어오는 중년 남성을 알아보고 달려가 손을 잡았다. "선생님, 진작 찾아뵀어야 했는데…. 이 은혜 평생 갚으며 살겠습니다." 캐주얼 차림의 김건형(49·목포 남악 하나내과 원장)씨가 조씨를 알아보고 환하게 웃었다. "건강한 모습 다시 보니 반갑습니다. 하하."

 

조씨가 등산로에서 심장이 멎어가고 있었던 것은 한달 전 일요일 새벽이었다. "나는 심장 전문의"라고 한 등산객이 그를 구하고 사라졌다. 은인(恩人)을 찾는 조씨의 사연이 조선일보에 소개됐다. 조씨의 은인을 어렵사리 찾아낸 기자를 통해 두 사람은 다시 만난 것이다.

 

'청계산의 기적'이 일어난 것은 지난 7월 13일이었다. 조씨는 이날 오전 6시쯤 집 앞 청계산을 뛰어올라갔다. 일하느라 밤을 새운 뒤였지만 체력엔 자신이 있었다. 정상을 100여m 앞뒀을 때 조씨는 '누군가 양손으로 심장을 쥐어짜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조씨는 "발길을 돌려 산을 내려가려 했지만 곧 휴대폰을 꺼낼 수조차 없이 온몸에 힘이 빠졌다"고 말했다.

 

조씨가 주저앉은 그때 김건형씨가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김씨는 "누군가 주저앉는 걸 보고 곧장 다가갔다"고 말했다. 심장전문의인 그는 "전형적 심근경색이었고 매우 중대한 상황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혼절하기 직전이었다. 김씨가 손으로 어림한 조씨의 최고 혈압은 90까지 떨어져 있었다. 그는 "함부로 옮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휴대전화로 119에 전화를 걸어 헬기를 요청했다.

 

119상황실은 "날씨가 좋지 않아 헬기는 어렵다. 응급대원을 올려 보내겠다"고 했다. 김씨는 "나는 심장전문의다. 헬기가 뜨지 않으면 이 사람은 죽는다"고 했다. 그의 단호한 말에 119는 헬기를 띄웠다. 헬기가 오는 동안 김씨는 옷을 벗어 쓰러진 조씨의 체온을 유지시키고 식은땀을 쏟아내는 그에게 계속 물을 먹였다. 자꾸 일어나려는 조씨를 눕혀 최대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김씨는 호흡이 가쁜 조씨에게 심호흡을 시켰고, 다리를 심장보다 높게 들어 올려 심장으로의 혈액 순환을 도왔다.

 

조씨는 2시간30분 만에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 후송됐다. 의사는 "이 병원 모든 환자 중 지금 당신이 제일 위독하다!"며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김씨의 응급처치가 없었다면 조씨는 수술받을 기회조차 없을 만큼 급한 상태였던 것이다. 사흘 뒤 조씨는 두 발로 걸어 퇴원했다. 병원 의료진은 "기적 같은 일"이라며 "우리가 돈을 댈 테니 한 달 뒤에 심장 MRI 한 번 더 찍자"고 제의했다.

 

조씨는 산중(山中) 은인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병원 기록부에도, 119 소방 기록에도 그의 흔적이 없었다. 지인을 통해 신문 기고(본지 1일자 A29면 '山行 중 죽을 목숨 살려낸 심장 전문의를 찾습니다')도 했지만 소식이 없었다.

 

김씨는 "신문에 난 사연도 읽었고, 헬기에 오르기 전 조씨가 힘겹게 건넨 명함도 갖고 있었다"고 했다. "의사라면 도와주는 게 당연한 일인데, 그걸 잘했다고 하는 게 과찬인 것 같아 차마 나서지 못했습니다."

 

 지난 1일 조민국(가명)씨의 후배 김병기씨가 본지 A29면에 기고한 ‘山行 중 죽을

 목숨 살려낸 심장전문의를 찾습니다’기고문

 

조씨가 산에서 김씨를 만난 건 천운(天運)이었다. 주중엔 목포에서 일하고 주말은 서울 집에서 보내는 김씨는 주말마다 오전 7시쯤 집을 나서 근교 산들을 올랐다. 그러나 청계산만큼은 이날이 처음이었고, 평소보다 이른 오전 5시 30분쯤 집을 나섰다. 두 사람이 같은 등산로를 올랐고 김씨가 심장전문의라는 것도 행운이었다. 김씨는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지나가던 등산객 100여명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도움을 주려 했어요. 등산객들이 건넨 등산복과 물통, 사탕 등이 산더미처럼 쌓였습니다."

 

조씨는 그 일 이후 술을 끊고 매번 거르던 아침밥도 꼭 챙긴다고 했다. 김씨는 "의사들은 '하나의 병이 만병(萬病)을 치료한다'고 말한다"며 "이대로만 계속 관리하시면 아무 탈 없었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건강해지실 거다. 그것 말곤 더 바라는 게 없다"고 말했다. (엄보운 기자)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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