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벌초2018. 9. 9
▲ 2017. 9. 16
한가위가 다가오면서 여기저기 벌초하는 모습들로 분주하다. 바야흐로 벌초의 계절이다.
무덤의 잡풀을 베어내고 주위를 깨끗이 하는 벌초(伐草)를 제주도에서는 '소분(掃墳)'이라고도 한다. 단순히 풀을 제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묘의 의미까지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풀은 백중이 지나 처서가 되면 생장을 멈춘다고 한다. 이때가 대체적으로 추석을 한 달가량 앞둔 시기가 된다. 제주도에서는 처서가 지나고, 추석을 보름 앞둔 음력 팔월 초하룻날이 되면 일가가 모여 벌초를 한다. 소위 문중(門衆)벌초인 '모둠벌초'이다. 그리고 '식게(제사) 명절'을 같이하는 가까운 친족끼리는 이 '모둠벌초'를 하기 전에 미리 가족벌초를 한다. 이를 '가지벌초'라고 한다.
예전에는 가지벌초를 모둠벌초일 전날인 음력 7월 그믐날에 실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직장인과 고향을 떠난 타지생활자가 많아지면서 '모둠벌초일' 직전 주말이나 일요일에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제주도에서 벌초는 가족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행사로서 대단히 중히 여긴다.
조상의 묘가 방치되어 잡풀이 무성한 '골총(骨塚)'이 되는 경우, 그 자손들은 불효막심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는 또한 후손의 몰락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식게 안 헌 건 놈이 모르곡, 소분 안 헌 건 다 안다'(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은 남이 모르지만, 벌초하지 않는 것은 다 안다)는 속담도 있다. 제사보다 벌초에 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처삼촌 산소 벌초하듯 한다'라는 속담도 있다. 무슨 일을 성의없이 건성으로 처리하는 것을 빗댄 말이면서 정성을 다하는 벌초의 자세를 말해준다. 자신과 피가 섞이지 않은 관계인 처삼촌 인데 그 산소의 벌초에 정성이 들어갈 리가 없다.
자동차가 흔하지 않았고 모든 작업을 수작업으로만 이루어지던 예전에는 벌초가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었다. 선조들이 풍수지리설에 따라 고른 명당이 가까운 거리에 몰려 있을 리가 만무하다. 선조에 대한 공경의 표현으로 묘의 봉분이 작지 않았고 그 주변을 산담으로 넓게 둘러쌓아 그 면적도 넓게 자리한 것이 일반적이었다. 묘역을 일일이 낫으로 벌초하는 일에는 일손이 많을수록 좋았다. 그래서 타지에 나가 산다 하더라도 벌초행사에는 모두 참가한다. 초등학교 코흘리개까지도 이 벌초행사에 동원되었다. 학교에서는 '벌초방학'까지 하며 배려하기도 했다.
나도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벌초행사에 따라다녔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하는 일이라야 산 담 위의 잡풀을 뽑거나 산 담 바깥 소위 '산자전'의 가시덤불을 뽑는 일이 고작이었다. 어린 아이들까지 동참시키는 것은 단순히 일손을 더는 것보다 교육적 효과를 노린 의미도 있었다.
벌초는 한 나절 이상 진행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인원을 여러 개 조로 나누어 구역별로 벌포작업을 분담하고 마지막으로는 모든 가계의 구심점이 되는 가장 윗선대의 묘소에서 합류한다.
한편 여자들은 아침부터 음식을 같이 장만하여 약속된 점심장소에 모인다. 이렇게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같이하다보니 벌초는 온 일가친척의 '야외친목행사'가 되었다.
한편 요즈음은 대리벌초가 유행이다. 농촌 농협에서는 추석을 앞두고 직접 벌초를 하지 못하는 출향민들을 위해 벌초 대행사업이 해마다 늘고 있다고 한다. 산소의 위치 면적 거리 등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1기당 10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또 하나의 아름다운 전통이 사라져가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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