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국산(445.4m)/이천
2016. 3. 29(화)
친구와 둘이
마국산(馬國山)은 이천 모가면과 안성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예전 이름은 마옥산이었다. 북쪽 3km 정도 거리에는 비슷한 이름의 마오산(270.7m)도 있다.
마국산 남쪽 기슭에는 선조의 막내 어린 왕자 영창대군의 묘가 있다.
산행은 산 북동쪽 모가면사무소가 있는 진가리 쪽에서 원점회귀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우리는 영창대군의 묘도 찾아볼 겸 은석사거리에서 시작하기로 하였다.
영창대군 묘 - 마국산 - 마오산 - 매봉재 - 진가리(8.5km, 점심 1시간 알바 20분 포함 4시간)
[갈 때] 야탑터미널(이천행) 08:20 - 이천터미널 09:37/스탠다드차타드은행 앞 [26-1]번 버스 09:50 -
은석2리(은석4거리) 10:20 하차
*곤지암에서 교통 혼잡으로 죽산행 [26-1]번 버스를 놓치는 줄 알았나 그 버스 또한 예정 출발시간
(09:40)보다 10분 늦게 도착하였다.
[올 때] 진가리 [25](이천-장호원) 14:50 - 이천터미널 15:17/(성남행)17:10 - 야탑 18:15
10:30 영창대군 묘
영창대군(1606~1614)은 선조의 14명 아들 중 유일하게 정비인 인목왕후가 낳은 아들이다.
서자 출신으로 방계 콤플렉스가 많았던 선조는 왕자들 중 정궁소생인 영창대군을 총애하였다. 세자를 광해군에서 영창대군으로 바꾸는 문제까지도 논의 되었으나 이미 병세는 위중하였고 영창대군은 3세에 불과하였다. 1608년 선조는 죽고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다.
광해군은 인목대비를 폐위하고 8살 영창대군을 서인으로 강등시켜 강화로 유배한다. 강화부사 정항은 8살의 어린 왕자를 방안에 가두고 장작불을 지펴 열기로 죽게 하였다.
한편 인목대비는 인조반정으로 복위되자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을 위하여 칠장사를 원찰로 삼고 자주 찾았다.
중부고속도로 밑 통로
이정표가 판내하는 방향을 무시하고 큰 길을 따라 직진한다.
마국산의 트레이드 마크 '빨간 우체통'
10:50 공가
오른 쪽에서 올라오는 뚜렷한 능선길을 만났다.
11:10 큰바래기산
빨간 편지통들이 의자 용도로 쓰이고 있다.
마국산
마국산 정산에서는 군용 헬기가 훈련 중이다.
11:30 마국산
마국산을 '오운봉'이라고도 부르는 듯..
예전의 '마옥산(磨玉山, 444.4m)' 표지석은 뽑혀 버려져 있다.
노성산인 듯하다. 오늘 미세 먼지 수준이 평소의 2배라고 한다.
마국산에서부터는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정상 바로 밑에서 1시간(11:40~12:40) 점심하고 '서경저수지'를 기준하여 진행한다.
12:50
서경저수지 방향으로..
전체적으로 육산인데 간혹 이런 바위들로 만난다.
오늘 산행 중 만났던 단 한 분. 차림으로 보아서 동네 주민인 듯 하다.
13:20 마오산
마오산
이정표 상의 동네 지명이 생소하여 좌측으로 잘못 내려가 20분 동안 알바하고 말았다. 우틀이 정답이었다.
소고리 갈림길. 오른쪽 진가리 방향으로..
위 '진가리갈림길'에서 10m 진행하면 의자 두개가 있는 갈림길에 이른다. 이정표도 없다.
좌틀이 정답이다.
매봉재
매봉재를 '모산'이라고도 부르고 있는 듯하다.
매봉재에서 서경저수지 방향으로 내려가면 '큰고개'에서 진가리까지 1.5km 가까이 포장길을 걸어야 한다.
우리는 진가리(←) 방향으로..
진가리마을로 내려왔다.
방금 내려온 날머리
14:30 이천 모가면 진가리
*진가리에서 이천까지는 장호원-이천간 운행하는 [25]번 버스가 거의 30분 간격으로 다니고 있다.
이천 터미널 근처에서 이천쌀밥집을 찾았봤으나 없다. 돼지갈비로 간단히 뒤풀이하고 산행일정을 마쳤다.
1.0km 20분의 알바와 점심 1시간을 포함하여 9.5km 4시간의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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