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보리교회 외/갈보리교회 이필재목사 설교

영혼의 수확 시기

산넘고 물건너 2013. 11. 29. 19:30

 

영혼의 수확 시기

요한복음 17:11~16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

    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계절적으로 지금은 추수가 끝난 시기입니다. 지금 수확한 식량으로 일 년 동안 살아갈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영혼의 수확기를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도다.”

11절에 이렇게 말씀하시고, 13절에는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라고 하심으로 지상의 삶을 마감하고 계시는 기록을 본 것입니다.

주님의 33년 지상 생애 결산하면, 영원의 세계에 계시다가 시간 속에 오셨으며 시간 속에 계시다가 다시 영원의 세계로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시간과 공간의 초월적 세계인데 이 지상은 시간의 제약을 받는 세상입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시간의 초월성을 말하고 그 영원의 세계에서 인간의 시간 속으로 오셔서 33년을 계시다가 시간을 초월하는 영원의 세계로 다시 가신 것입니다. 영의 세계에 계시다가 물질세계에 오셨으며 물질세계에서 다시 영의 세계로 돌아가신 결과가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더니 제자들이 그 보는 것을 영인가 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나는 있으니라.”

이렇게 영과 물질을 말씀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육신은 물질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도 인간 세계에 오셨기 때문에 똑같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것이 물질입니다. 예수님은 영의 세계의 영적 존재로 계시다가 물질세계에 물질을 입으시고 오셨다가 다시 영의 세계로 가신 결과입니다.

지금 우리는 절대적 의존하는 힘이 하나 있는데 과학이라는 힘입니다. 과학은 진리이다. 따라서 과학이 아닌 것은 모두다 비진리이다. 미신이다」  그렇게 믿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과학에 한계가 있음을 우리 모두다 기억해야 합니다. 과학은 도덕성이나 영적인 것은 밝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본래의 자리로 다시 되돌아가심을 선언하는 것은 우리에게 큰 희망을 선언하는 영적 의미의 말씀입니다.

말씀의 의미가 주는 신선한 충격을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데, 주님께서 "나는 이제 이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고 아버지께로 간다"는 것은 그 첫 번째 의미가 하나님과의 동질성 회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절대적 교리가 삼위일체라는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는 본래부터가 일체라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그러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떤 의미인가?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본래 모습의 회복이 앞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예수님이 선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동질성 문제를 논할 때 가장 확실한 증거는 창조론에서 찾습니다.

창세기 1장, 2장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는 최대 중요한 조건이 하나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하나님과의 동질성이라는 말입니다. 그러한 인간 본질이 죄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동질성이 파괴되었습니다. 변질된 모습이 되어 버렸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라는 것은 동질성 회복의 권세를 부여하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하게 회복이 안 되는 것이고 아버지께로 갈 때 완전 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그 증거를 몇 군데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하나님의 나라 모습이 거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저희와 함께 계시다'는 말은 하나님 백성의 완전한 동질성 회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와 함께 동거할 수가 없습니다. 죄인된 인간이 완전 회복이 되어서 의만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친히 저희와 함께 계시겠다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에 보면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함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이게 무엇입니까? 변화되어 회복된 인간 모습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영적 존재의 완전 회복이 그렇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쫓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과 항상 함께 있을 수 있는 완전 회복된 인간의 모습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말씀에

“이제 내가 너희를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 곁으로 가오니”

33년 동안 인간의 시간 속에 육신이라는 물질을 입으시고 나타나셨던 성자 하나님이 이제

“그 시간과 물질을 벗어나서 변화되어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나니”

이런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는 새로운 세계관을 우리들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의 걱정이 하나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께로 가는데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두 가지 세계관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이 세상 가운데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다른 세계관 백성을 이렇게 선언합니다.

“내게 주신 아버지 이름으로 저희를 보존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기도는

“내가 아버지와 하나인 것 같이 저희도 나와 하나가 되게 하사 내가 가진 이 하나님 나라의 권리를 똑같이 갖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세계관에서 요한계시록은 확실한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전혀 새로운 세계관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우리 인간이 마지막으로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이라는 절대 고난마저도 초월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관을 밝혀주는 계시의 새로운 세계관으로서의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토인비 박사의 역사관 가운데 골자가 있습니다. 그는 “문명과 문화는 역경의 소산이다.” 그렇게 말하였고, 그가 말한 Universal Church(보편 교회)의 개념이란 뭐냐? “위대한 종교가 인류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대한 종교란 뭐냐? 새로운 세계관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을 인간에게 제시할 수 있는 종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을 넘어서 다가오는 초월적인 세계관에 대한 역사성을 믿으면서 인류에게 제시할 수 있는 종교가 위대한 종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성경을 보십시오. 히브리서를 보시면 어떠한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습니까?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였으나 장래의 기업을 바라보며 나갔으며”

새로운 세계 경험에 대한 지시를 그렇게 했지 않습니까?

“노아는 인류 구원을 위해서 누구도 믿지 않는 방주를 믿음으로 예비하였으며”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역사관을 그렇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11장을 보시면 험악한 세상에서 장래 새로운 세계관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이사야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 하면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세계관을 제시합니다.

마침내는 인간이 소유하게 될 새 땅에 대한 열정의 집념을 인류에게 제시하는 희망의 종교가 위대한 종교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나는 그 세계로 가오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하셨는데 성경 첫 번째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에 일치하는 메시지가 얼마나 많습니까?

창세기에 보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나타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그 땅이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된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세계관의 역사관으로, 창세기 3장에 보면 생명나무의 열매는 절대로 먹지 못하도록 금지했는데 요한계시록 22장에는 이제 마음대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세계관의 제시입니다. 인간의 첫 번째 사망이 창세기에서 왔는데 21장에 보면 다시는 사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세계관입니다. 만물의 시작이었는데 만물의 종말로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새로운 역사관을 제시하는 내용을 지닌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보게 됩니다. 인간 세상 삶의 가장 괴로운 일들을 우리는 눈물이요 애통이요 곡하는 것이요 아픈 것이요 사망이란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세계관의 모습에 대한 계시록의 증언은 뭐라고 말합니까?

“모든 눈물을 그 눈물에서 씻기시매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나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현실 세계와 정 반대 세계관을 제시하는 것이 위대한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내가 그 세계로 가서 아버지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미국 농구 선수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던 매직 존슨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뉴스가 방송되었을 때 미국의 고등학생, 대학생들은 자기 아버지가 죽는 것보다 더 슬퍼했다고 신문에서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놓고 미국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영혼의 각성이 왔는지 레이커스 농구팀을 미국 최대 팀으로 발전시킨 코치 팩브라운니가 전국 방송에 나왔습니다.

“친애하는 미국 국민여러분!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우리 모두에게 행복한 즐거움을 선물해준 매직 존슨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그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그를 위해서 기도를 드리는 일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방송했고

레이커스 농구팀 선수 중에서 훌륭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에이시그린이라는 선수가 있었는데 그 선수와 농구경기 직전 농구코트 중앙에 마이크를 잡고 나갔습니다. 5만 명의 관중을 향해서 말했습니다.

“스포츠를 사랑하시고 매직을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분 항상 이 자리에서 우리 매직 존슨의 아름다운 경기를 행복하게 관전하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그의 건강 회복을 위해서 한번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5만 명 통성 합심 기도를 이끌어내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 기억에 그 일이 지나간 지 20년도 넘었는데 금방 죽는다고 보았던 매직 존슨은 다저스 야구팀의 오너가 되어서 우리나라 류현진 선수를 영입했습니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은 아주 갈 곳이 분명해졌습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새로운 세계관과 역사관을 제시하는 내용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행복한 감정을 가질 때는 내 장래가 보장되어 있을 때입니다. 기독교는 언제나 미래지향, 즉 계시적 종교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사 활동을 하던 미국 모리슨 선교사가 20년간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했는데 가정생활은 불행해졌습니다. 두 아들이 풍토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두 아들이 죽는 바람에 어머니도 충격을 받아 사망했습니다. 이제 그는 20년의 선교 사역을 마치고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배는 미국 선교사였기 때문에 혜택이 하나 주어졌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인 루즈벨트가 2주간의 휴가를 아프리카에서 보내고 돌아가는 배에 동승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선교사이기 때문에 태워준 것입니다.

루즈벨트가 뉴욕 항구에 도착할 때 군악대가 연주했습니다. 예포가 울리고 미국 시민들이 손에 성조기를 들고 고층 빌딩에서 색종이가 날리고 건강하게 돌아오는 대통령을 환영했습니다. 배에서 내리는 길에 융단을 깔고 뉴욕 시장이 환영사를 했습니다.

그때 모리슨 선교사는 생각을 했습니다. ‘2주간 휴가를 즐기고 돌아오는 저 사람을 저렇게 환영하고 야단인데 나는 내 가족도 다 잃어가면서 20년 선교사역을 하면서 오는데도 나를 맞이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구나!’ 상대적 슬픔이 왔습니다. 그는 가까운 모텔에 방을 하나 빌려서 침대에 얼굴을 대고 통곡을 했습니다. 한참이나 울고 있는 시간에 주님의 음성이 그에게 들렸습니다.

“내 아들 모리슨아! 너는 아직 네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 네가 네 고향으로 돌아오는 날 내 나라의 천국 천사들의 음악으로 너를 환영할 것이며 네 두 아들과 아내가 너를 마중 나갈 것이다. 너에 대한 환영 연설은 내가 할 것이다. 네가 걸어올 길을 내가 미리 준비해놓겠다.”

그런 자신의 마음속에 확실한 영혼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모리슨은 그 소리를 듣고 다시 월요일 아프리카로 떠나서 거기에서 사역을 마치고 하나님 나라로 갔습니다.

주님과 같이 우리 모두 맡은 사역을 끝내고 주님과 같이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를 생각하며 우리들은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일평생 신앙생활을 하시는데 무엇을 얻으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베드로전서 1장 9절에는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미래 지향적으로 항상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는 종교입니다. 우리 그 나라를 생각하면서 오늘도 믿음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말씀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쌍히 바라보시며 “나는 이제 새로운 세계로 가오니 아버지 하나님이여! 저들도 나와 함께 하옵소서.” 애처로울 정도의 기도를 들어주셨나이다. 우리 모두가 제자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신 예수님 모습을 생각하면서 이 땅에서 우리 모두의 신앙생활이 승리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13년 11월 24일 이필재 목사 주일 예배 설교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