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도움 받은 엘리야
열왕기상 17:1~7
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4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5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11월은 추수의 달이며 감사의 달로 지키고 있습니다.
어느 민족이나 이때가 되면 자기들이 섬기는 신에게 추수 감사제 행사를 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인간의 1차 산업인 농사를 지어서 일용할 양식이 주어진 기쁨을 표현하는 문화인데 특별히 기독교는 가장 많이, 열심히 모든 교회들이 11월에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며 특별헌금을 드리는 순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나 동물이나 평생을 통해서 가장 열심히 본능적으로 노력하는 일이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이라고 봅니다. 안정감 있는 생활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서 누구나 애처롭고 순교자처럼 투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류의 역사를 보면 전쟁 역사라고 할 만큼 끊임없는 전쟁을 해왔고 지금도 쉬지 않고 전쟁 준비를 합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고,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내 생활을 안정감 있게 하려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 임금들의 1차적 책임은 재임기간 동안에 영토 확장을 해야 위대한 임금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전쟁을 많이 한 것이고 지금은 국민소득을 올려야 훌륭한 대통령이 됩니다. 요즘 박근혜 대통령이 부지런히 외국 순방을 가는데 갈 때마다 제목이 따라붙습니다. “세일즈외교”라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돈 벌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해야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인생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몇 번의 고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진학할 때 어떤 전공과목을 선택해야 되는가 그것이 고민입니다. 내 적성에 맞는 결정을 하도록 노력하고, 그래서 해마다 이때가 되면 그 문제가 가족 간에 큰 의논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진출을 할 때 또 한 번 고민을 합니다. 그때 결정이 일생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그때 결정이 평생을 갔습니다. 선택이 곧 인생이며 행복입니다. 반대로 잘못 선택은 인생의 불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어느 대기업에 투자했다가 그 대기업이 부실기업이 되는 바람에 망한 사람들이 많다는 뉴스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블랙먼데이(Black Monday)”라는 단어가 생겼습니다. 토요일이 지나고 주일이 지나고 월요일에 출근해보니까 세상이 변했습니다. 주식 시장이 폐허같이 되어서 다 망해서 블랙먼데이라는 말이 생긴 것입니다.
옛날에 제가 퇴계원에서 중고등부 전도사 사역하고 있을 때 있었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 시절에 형제 같이 아주 친하게 지낸 동기생 전도사 한명이 있었는데 어느 날 흥분된 얼굴로 나를 찾아와서 아주 좋은 소식이 있다고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퇴계원에서 전도사를 했고 그 친구는 개봉동이라는 동네에서 전도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은 앞으로 자기가 사는 개봉동이 국가 시책에 의해서 도시개발이 된다는 비밀 정보를 미리 입수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땅 좀 사놓으면 틀림없이 대박이 터지니까 이 전도사도 해보자는 것입니다. 자기는 고향에 부모가 물려준 땅이 좀 있어서 그것을 팔아서 얼마를 좀 구입해놓았다면서 친구가 좀 생각나서 왔으니까 어떡해서든지 돈을 마련해서 땅을 사놓으라는 것입니다.
“우리 평생 목회해도 집 한 채 못산다. 이때 해야 된다.”
그러면서 저를 데리고 현장에 가서 보여주고 자기 땅도 보여주었습니다. 저도 정말 돈이 있었다면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럴 능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부모가 물려준 땅 한 평도 없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몇 달 지나니까 신문에 발표가 나고 서울에 땅 장사들이 그곳에 다 몰려들고 그 시절에는 복덕방이라고 했는데 복덕방이 수십 개가 몰려들고 난리가 났습니다. 땅 값이 매일 올라가는데 그 친구는 매일 신나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어느 날 얼굴이 새파랗게 되어서 찾아왔습니다.
“이 전도사! 이거 큰일 났다.”
도시 계획을 했는데 자기가 사놓은 땅으로 6차선 도로가 나버렸다는 것입니다. 양쪽에 조금씩 남아있고 6차선이 훤하게 빨간 깃발을 다 꽂아놓은 것입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이 국가가 공시지가를 제대로 쳐주던 시절이 아닙니다. 국가에서 하면 주는 대로 받아야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걸린 사람 그 시절에는 다 손해 봤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6차선이 나버리고 쓸모없이 양쪽에 조금씩 남았으니 이 친구가 사색이 되어서 이거 어떡하느냐며 막 울고 하나님도 원망하는 것입니다.
저는 거기에서 그 친구가 슬퍼하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얼마나 희망을 가졌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자리에서 그 친구 위로할 말이 없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해석해야 된다. 이렇게 다른 데로는 안 잡고 당신 땅으로 6차선 도로가 훤하게 났다는 것은 앞으로 우리 친구의 길이 훤하게 뚫린다는 사인이다. 걱정 말고 우리 목회나 열심히 하자.”
그랬던 기억이 있습니다.
추수 때가 되어도 곡식 창고에 곡식이 채워지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대다수는 추수 때가 더 슬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감사의 달, 수확의 계절에 우리가 어떻게 지내야 훌륭한 추수감사절을 지낼 것인가? 똑같은 문제를 겪었던 구약 시대 유명한 예언자 엘리야를 조명하면서 해답을 찾겠습니다.
성경말씀은 인간이 어떤 경우를 만나도 구원 받을 수 있는 말씀이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찾지 못해서 그렇지 그 말씀대로 하면 어떤 경우에서도 살아남습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유대 나라는 사사들이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국가 동시 책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공식적으로 왕이 취임한 것은 사울 때부터였습니다. 그때로부터 유대 민족의 왕은 모두 41명이 나왔습니다. 그 많은 왕들 가운데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악한 평가를 받은 사람이 아합이라는 사람입니다. 22년 동안 통치하면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바알 종교를 위해서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 믿는 것을 버리고 그런 것입니다. 왜 그런 일을 했는가? 동기가 있습니다. 장가를 잘못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바알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이웃 시돈 나라 바알의 절대 숭배자인, 그래서 이름도 엣바알이라고 지은 부족 왕의 딸을 왕비로 맞아드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혼하자마자 이세벨은 유대 나라에 와서 왕후가 되었으니까 유대 민족의 신앙을 완전히 전멸시킨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숭배는 하지 마라. 내가 믿는 바알을 섬기라.”
그래서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엘리야를 아합왕에게 보내서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한 내용입니다.
이로 인해서 유대 나라는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는 민족 대재앙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그 대재앙 가운데 엘리야 자신도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이 당하는 의미는 분명합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의 백성인 나도 그 고난 안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국가적 위기를 만나서 먹고 사는 문제가 매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나는 예수 잘 믿고 기도 많이 했다고 나만 평안하고 잘 먹고 잘 살 수가 없지 않습니까? 전쟁이 일어났는데 민족 전체가 다 고난당하는데 나도 그 중에 함께 있는 것이지 그 중에서 나는 하나님 잘 믿는다고 나만 살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불경기가 되니까 너도 나도 다 같이 어려워지는 것이지 교회 다니는 사람 집은 괜찮은 혜택이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것 때문에 가끔 신앙에 손해를 봅니다.
엘리야는 민족 재난을 자기가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선포한 그 재앙 속에 자기가 들어있습니다.
예레미야는 70년 바벨론 포로가 될 거라고 유대 민족에게 선포했는데 자기도 포로가 되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눈물을 많이 흘려 눈물의 선지자라 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어느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런 고난당할 죄가 없는데 어찌 이런 고통이 나의 삶을 고난스럽게 하는가?’ 이 문제는 얼마나 심각합니까? 하나님을 향해서 예수님도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심각합니다.
죄가 무겁지 않은 사람도 죗값이 아닌 공통적 고난 역사에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지진이 나서 온 세상이 다 흔들리고 무너졌습니다. 예수 잘 믿는 집이라고 해서 안 흔들린다는 법이 없지 않습니까? 인간은 공동체적 운명을 띄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라서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라. 그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 엘리야는 자기가 선포한 재앙에 자신이 고난을 겪으면서 그릿 시냇가 그늘진 곳으로 가서 숨었다고 했습니다. 나타나면 죽기 때문입니다. 거기 가면 마실 물이 있으니까 그 물을 마시면서 유지하고 있습니다. 먹을 식량이 하나도 마련되지 않은 그런 곳에 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자기가 선포한 그 재앙 때문에 굶어죽게 생겼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우리 신자들에게 시험과 갈등의 부분이 됩니다.
“나는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 죄 안 짓고 선하게 살았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왜 굶어죽게 되느냐?” 이런 갈등이 우리에게 올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들을 극심한 고난에 빠지게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그 극심한 고난이 바로 나의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고 영혼이 살찌게 되는 영적 축복의 기간이 됨을 우리가 깨달아야 성령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믿음 생활 잘못하면 아주 낙오됩니다.
여러분! 성경의 인물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어떤 인물을 맡기실 때는 반드시 깊은 구덩이에 빠뜨려서 단련하신 후에 꺼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모리아 산에 가서 네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100세에 얻은 귀여운 아들을 어떻게 심장에 칼을 꽂아 죽여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까? 그런데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죽지 않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네가 이제야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내가 알았다.”
그 다음에 아브라함을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삼았습니다.
요셉은 무슨 죄가 있어서 감옥에 들어갑니까? 감옥에서 몇 년 동안 죄 없이 고통을 당하는 과정을 통해서 나라와 민족을 구하는 인물로 하나님이 올려 세우셨지 않습니까? 바울은 세계 선교의 1인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라비아 사막에 가서 3년 수련을 받은 후에 사도로 출발하는 바울의 사도행전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기간이 길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연단하신 후에 이스라엘의 민족 지도자로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이런 것을 성경에서 우리가 배우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도 실제로 고난스럽고 배가 고파서 고통을 받아보아야 비로소 마음이 넉넉한 삶의 소유자가 되는 영적 의미를 우리가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느 인생이나 어느 기간을 배고프게, 고난스럽게 살아보는 경험은 절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오히려 그 기간이 축복이 되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는 행운을 기대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 인간 심리를 이용해서 벌리는 국책 사업이 복권 사업입니다. 이것은 쓸데없는 사업입니다. 갈보리 교회 교인 여러분! 복권 사지 마십시오. 그 돈으로 헌금이나 하십시오. 왜냐하면 전 세계 가장 소문난 도박장이 라스베이거스입니다. 일 년 내내 십년 내내 거기는 불경기가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데가 불경기이면 거기 가서 행운을 잡는다고 더 많이 옵니다. 날마다 행운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길에 오고 갑니다. 그런데 라스베이거스에서 행운을 잡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느냐? 미국에서는 행운을 잡은 사람들의 뒤를 추적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되는가 추적해서 발표하게 되어 있습니다. 거의 다 불행해졌습니다.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솔직하게 대답하십시오. 당신이 이렇게 일화천금이 생겼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혼이라는 대답을 제일 많이 했습니다.
이 돈만 가지면 훨씬 더 좋은 사람과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일할 필요가 없으니까 건달패가 됩니다. 돈 뜯으러 오는 사람이 하도 많으니까 한 곳에 살지 못하고 비밀스럽게 주소를 옮겨 다닙니다. 나중에는 할 일이 없으니까 술만 마셔서 알코올 중독자가 됩니다. 나중에는 그것 가지고 안 되어서 마약 중독자가 됩니다. 나중에는 돈이 다 떨어져서 거지가 되어 자살합니다. 이게 공식적으로 행운 잡은 사람들이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은 행운으로 그렇게 되기 원하십니까? 평생을 살다보면 배고픈 때가 있어야 합니다. 넉넉한 때도 필요합니다. 누리는 때도 있고, 주리는 때도 있고, 나눠주면서 살 때도 있고, 얻어먹으면서 살 때도 있어야 합니다. 많이 소유했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가난하다고 불행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은 이것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관심과 뜻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어떤 목사가
“목사님 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해주세요.”
이렇게 알지도 못하는 목사님이 요청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허락해드렸습니다.
그분은 고아원에서 자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6·25 전쟁이 터져서 인민군에게 붙들려서 북한 군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민군이 되어서 국군과 싸우다가 국군 포로로 잡혀 다시 국군으로 싸우다가 중공군에게 붙들려서 중공군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군복 세 가지를 입고 살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남한에서 제대를 했는데 고아원에서 자랐으니 갈 데가 없지 않습니까? ‘춥고 배고프고 갈 데도 없고 오라는 데도 없으니 어떡하나?’ 봉천동 어느 동네를 밤새도록 헤매다가 새벽에 불을 밝힌 곳이 교회 밖에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가난해 보이는 교회였는데 그래도 그곳에 불이 켜져 있으니까 ‘추우니 저기 들어가서 쉬어야겠다.’ 생각하고 들어갔다는 겁니다.
교회 불은 희미하게 켜져 있는데 아무도 없더랍니다. 혼자라는 것입니다.
‘어휴! 이 교회 신세와 내 팔자가 똑같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자기는 그래도 과거에 교회 다닌 경험이 있어서 ‘팔자에 맞는 찬송이나 하나 부르고 나가자.’ 생각하고 무엇을 불렀느냐 하면
“나는 갈 길 모르니 주여 인도하소서. 어디 가야 좋을지 나를 인도하소서.”
그것을 부르니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강대상 뒤에서 사람 한명이 벌떡 일어나더랍니다.
목사님이 잠자다 일어난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오셨나요? 우리 교회는 아무도 안 나오십니다. 내가 여기서 잠깐 잠이 들었네요. 우리 같이 찬송 부릅시다.”
“그러지요.”
그랬더니 그 목사도 팔자에 맞는 찬송을 골랐는데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도 외로워 정처 없이 다니며”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목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아주 펄펄 나는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그릿 시냇가에 숨은 엘리야는 굶어 죽게 생겼지만 어떻게 됩니까?
오늘 성경 말씀에는 하나님의 관심이 까마귀를 통해서 나타났다는 것을 조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절대 그를 죽이지 않는다. 최소한의 먹을 것을 날라다 주면서 고난을 이길 수 있도록 하신다.” 이게 하나님의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관심사로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도 6·25 세대이지만 6·25 세대는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살아남습니다. 왜? 고난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차진국 집사님의 간증은 참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가 6·25때 육군이셨는데 그 시절에는 군인이라고 하면 배고픈 대명사였습니다. 젊은 청년들에게 밥을 조금씩 주니 견딜 수가 있습니까? 전쟁이고 뭐고 군인이 힘이 있어야 전쟁을 하는데 이렇게 배가 고프니 우리 자신이 쓰러지겠으니 그래서 한밤중에 의논을 했다고 합니다.
“야! 우리 군인이 쓰러지면 민간인도 다 쓰러진다. 미안한 일이지만 민간인 동네에 가서 돼지 한 마리 훔쳐서 잡아먹자.”
합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서 돼지를 한 마리 훔쳐오려고 했는데 돼지가 소리를 지르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어떻게 가져옵니까? 총을 쏘면 총소리에 놀라고 동네에 큰일 난다고 하니 거기 있던 의무병 한명이
“우리 군인들에게 쓰는 마취제가 있는데 이거 돼지 코에 갖다 대면 1분 안에 쓰러지니까 이거 가지고 가십시오.”
“와! 좋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받아가지고 돼지우리에 가서 돼지 코에 갖다 댄 것입니다. 그런데 막 갖다 대도 영 안 쓰러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거 의무병이 잘못 준거다. 1분 안에 쓰러진다더니 30분이 지나도 꿀꿀 거리며 돌아다니기만 한다.”
그래서 “이거 어떻게 된 건가?” 하고 자기들이 마셔봤다는 겁니다.
1분 안에 쓰러진 겁니다. 그래서 아침이 주인이 나와서 당신들 누군데 여기서 잠을 자느냐고 할 때 그걸 해명하느라고 아주 혼났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세대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초석이 된 겁니다. 6·25세대들이 그런 힘든 일을 겪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밑거름을 그들이 다 놨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한 거 아닙니까?
그릿 시냇가에 숨어서 살고 있는 엘리야도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을 때 산 까마귀들이 물어다주는 것을 먹고 생명을 연명하는 그런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릿 시냇가는 개인의 사정에 따라 다른 경우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반드시 먹는 식량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건강의 그릿 시내, 외로움의 그릿 시내, 명예의 그릿 시내, 사랑의 그릿 시내, 경제적인 그릿 시내…. 누구에게 어떤 문제가 오든지 그런 때를 만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버리셨는가? 아닙니다. 그때가 영적으로 하나님과 내가 가장 가까워지는 시간을 성경은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자 이런 말씀이 기록된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에 보면 아브라함의 자손은 자부심 하나로 살아가는 백성 아닙니까?
하나님이 그 많은 종족 가운데 우리 민족을 선택해주셨다는 택한 백성이라는 이 자부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런 백성들도 어떻게 됩니까?
여러분!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지구의 중심이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들은 절대 양보하지 않고 천국의 그림자라고 말합니다. 성경에도 그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벨론, 느부갓네살의 공격을 받아 처참한 식민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예레미야는 그때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뭐라고 합니까?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이리 적막히 앉았는가?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미망인 같이 되었고 열방 중에 공주 같던 자가 이제는 조공 드리는 자같이 되었도다. 시온의 도로가 처량함이여! 제사장과 처녀들이 탄식하도다.”
예루살렘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도 눈물 흘리면서 이런 슬픈 고백을 독백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선택받은 아브라함의 자손도, 지구의 중심이라고 하는 예루살렘도, 하나님의 종 제사장들도, 그릿 시냇가에 숨어 까마귀 신세를 지며 목숨을 부지하는 때가 있었음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엘리야는 그때 무엇을 했습니까?
하나님과 가장 가까워졌습니다. 그래서 그 고난의 시간에 하나님과 얻은 영적인 힘을 가지고 무엇을 합니까? 오늘 말씀이 17장인데 18장에 가보십시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데 바알 종교인들과 싸워서 갈멜산에서 이겨내지 않습니까?
성경에 죽음을 거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간 사람은 두 사람입니다. 에녹과 엘리야입니다.
하나님은 목적이 있어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그때 잘못 생각하면 신앙 타락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도다.”
이런 결론을 내면 큰일 납니다. ‘아! 이때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 하나님의 목적은 나에게 분명하도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려는 큰 사명의 어떤 영적 사인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때를 잘 넘겨야 됩니다.
여러분! 기회만 있으면 갈멜산 가보십시오. 그 산 꼭대기의 돌멩이는 모두다 불에 타서 화석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누가 그 산꼭대기의 돌을 만들었겠습니까? 바로 엘리야 때 하늘에서 내린 불이 그렇게 그 돌들을 살랐습니다. 가보면 아주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이태리의 천재적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를 음악 하는 사람들은 다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어느 날 수많은 음악 애호가 앞에서 연주회를 하는데 불행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바이올린의 줄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청중들이 더 놀랍니다.
“어휴! 파가니니가 오늘은 가장 불행한 날이다. 이거 어떡하나?”
그런데 세 줄을 가지고 열심히 하다가 또 하나가 끊어졌습니다. 줄이 세 개가 끊어지고 하나만 남았습니다. 그때 어떡하느냐? 파가니니가 잠시 음악을 멈추고 청중들을 바라보면서 바이올린을 높이 쳐들고 말했습니다.
“하나의 줄과 파가니니”
그리고 나서 그 한 줄을 가지고 완벽한 음악을 만들어서 그 사건이 그렇게 유명해진 것입니다. 바이올린은 본래 4줄이 있는데 가장 낮은 줄이 G선 아닙니까?
때로는 높은 줄은 나에게서 다 끊어지고 G선 하나만 남을 때가 있습니다. 건강의 줄도 끊어지고 출세의 줄도 끊어지고 물질의 줄도 끊어지고 사랑의 줄도 다 끊어지고 가장 보잘 것 없는 G선만 남을 때가 있습니다.
신앙인들에게는 그 선이 무엇입니까? 이게 신앙의 선입니다. 이거 하나만 끊어지지 않고 굳게 잡으면 그 다음은 하나님이 책임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음을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조명하는 것입니다.
이제 추수감사절 때가 되었는데 여러분! 우리 국가적 감사를 한번 생각해봅시다.
지금 대한민국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흉년이 안 듭니다. 제가 갈보리교회에서 11년째 목회를 하지만 한 번도 흉년들은 적이 없습니다. 해마다 국가적 고민이 이 많은 쌀을 어디에 보관할 것인가 창고가 모자라고 묵은 쌀 처리하는 것이 국가의 고민이 되었다고 합니다.
금년에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하다못해 배추와 무가 가격이 40퍼센트가 떨어져서 농민들이 고민한다고 합니다. 밤이나 고구마도 너무 넘쳐나고 그렇게 좋아하는 사골 뼈가 90퍼센트가 가격이 내렸는데 사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대한민국 땅에 창고가 넘치도록 먹을 것을 풍성하게 주셨다는 증거 아닙니까? 아주 놀라운 통계가 있습니다. 3년 연속 무역 1조 달러! 경상 수지 흑자로 이제는 일본을 앞질렀다고 합니다. 여러분! 일본이 한때는 미국을 앞질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이 일본을 앞지르기 시작했으니 이게 얼마나 위대한 일입니까?
이렇게 하나님이 축복을 부어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보지 못한다면 우매한 백성입니다.
앞으로 일주일 후에 추수감사예배를 드릴 텐데 빈손을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엘리야를 까마귀를 동원해서 먹여주신 것과 같이 일평생 나의 가는 길을 보호할 것이다.”
이런 믿음을 가지십시오.
여러분! 이스라엘 광야에서 40년 동안 살았지만 성경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너희 중에 한 사람이라도 굶어죽은 사람이 있느냐?”
없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 재앙 받아 죽었지 굶어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가는 길에 엘리야와 같은 하나님의 보호가 영원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는 엘리야를 통해서 고난의 문제 해결을 조명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엘리야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신앙을 가지고 우리 남은 생애를 훌륭하게 아버지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사역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금년에도 하나님은 우리나라 땅에 창고가 넘치도록 부어주셨습니다. 그 감사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도 감사가 넘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13년 11월 10일 이필재 목사 주일 예배 설교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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