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2022. 12. 9(금) <오후여담>
김종호 논설고문
가곡 ‘떠나가는 배’는 테너 안형일이 1952년 가을에 처음 불러 발표했다.
제주 제일중학교 국어교사이던 양중해(1927∼2007)의 시에,
영어와 음악을 가르치던 동료 변훈(1926∼2000)이 곡을 붙인 명곡이다.
제2절 가사는 이렇다.
‘터져 나오라 애슬픔
물결 위로 한 된 바다
아담한 꿈이 푸른 물에
애끓이 사라져 나 홀로
외로운 등대와 더불어
수심 뜬 바다를 지키련다’.
그 후에 제주대 인문대학장·사범대학장 등도 지낸 양중해는, 당시 6·25전쟁 피란을 와서 살다가
정든 사람들이 헤어져 배를 타고 떠나는 모습들을 보며 느낀 감성을 읊었다.
제자와 사랑에 빠져 제주도로 도피해 살다 이별한 시인 박목월의 애달픈 상황을
양중해가 시로 옮긴 것으로도 알려졌지만, 그 둘의 ‘제주 동거’는 1950년대 후반 한때였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의 외교관이면서 작곡도 한 변훈의 또 다른 대표곡은 ‘명태’다.
연희전문학교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이던 그는 1950년 6·25전쟁 발발로 미(美) 7군단 연락장교가 돼
대구에서 근무했다.
종군기자이던 시인 양명문(1913∼1985)은 자작시 ‘명태’를 건네주며 그에게 작곡을 권했다.
‘연극적·해학적 구성이 돋보이는 한국 리얼리즘 가곡의 대표작’인 ‘명태’의 탄생 경위다.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소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짝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하는 대목도 있는 그 명곡.
하지만 바리톤 오현명이 1952년 10월 부산에서 열린 ‘한국 가곡의 밤’ 음악회에서 초연할 당시,
기존 틀을 벗어난 파격으로 관객들의 비웃음도 샀다.
어느 평론가는 ‘그것도 노래라고 작곡했나’ 하는 혹평까지 했다.
그 이후 묻혀 있던 ‘명태’는 1964년 가을 서울시민회관 ‘대학생을 위한 대음악회’를 계기로,
‘일상을 신선하게 표현한 가사와 멜로디’라는 젊은층 호응을 받으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변훈의 걸작 가곡은 이 밖에도 ‘금잔디’ ‘초혼’ ‘낙동강’ ‘한강’ ‘진달래꽃’ ‘쥐’ ‘나그네’ 등 수두룩하다.
한국 가곡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떠나가는 배’와 ‘명태’ 발표 70주년의 겨울이 깊어간다.
차가워진 바람 속에 가슴을 파고드는 그 가곡들을 더 찾아 듣게 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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