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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산넘고 물건너 2023. 9. 25. 10:02

조선일보 [만물상] 2023. 9. 19

강경희 논설위원

 

최근 프랑스 전역에 있는 대형마트 카르푸 진열대에 ‘#슈링크플레이션이라고 제목을 단 이색 안내문이 등장했다.

펩시, 슬레, 유니레버 같은 세계적 식품기업의 26개 제품을 사러 온 소비자들 누구든지 알 수 있게 공급업자가 이 제품의 용량을 줄여서 사실상 가격을 올렸다고 큼직하게 써 붙인 것이다.

이 명단에 든 펩시의 립톤 아이스티 복숭아맛의 경우, 가격은 그대로인데 용량이 1.5L에서 1.25L로 줄어 가격 인상 효과가 20%.

 

슈링크플레이션이란 영어 단어 슈링크(shrink·줄어들다)와 인플레이션(inflation·물가상승)을 합한 용어로10여 년 전 여성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이 도입했다.

제품 가격은 그대로 둔 채 크기와 중량을 줄여 가격 인상 효과를 내는 것을 말한다용어는 새롭지만 사실 기업들이 오랫동안 써온 기법이다.

2010년 미국 크래프트사는 톱니처럼 생긴 초콜릿 바 토블론을 개당 200g에서 170g으로 줄이면서 톱니 간격이 약간씩 더 벌어지게 초콜릿을 살짝 덜어냈다.

 

인플레이션이 덮친 지난해부터 슈링크플레이션이 나라마다 기승을 부린다.

미국에서 프리토스 감자칩은 봉지당 감자칩을 5개씩 덜어냈다. 선메이드 건포도는 봉지당 70알이 줄어 640g이던 한 봉지가 567g이 됐다. 116g이던 크레스트 치약은 소비자가 알아채지 못하게 양치질 15번 할 만큼의 8g을 줄여 제품을 내놨다. 도브 비누도 10% 작아졌다.

 

소비자들에게 눈 가리고 아웅격의 또다른 숨은 인플레이션으로는 스킴플레이션(skimflation)이란 것도 있다.

크기나 용량은 그대로 두는 대신, 값싼 원료로 대체해 원가 부담을 낮추는 것을 말한다인색하게 굴다는 영어 단어 스킴프(skimp)에서 유래했다. 영국 수퍼마켓에서는 계란노른자 9% 함량의 마요네즈 대신 6%1.5% 함량을 판다.

이탈리아 식품기업 베르톨리는 올리브유 함량 21% 대신 10%로 낮춘 스프레이 제품을 내놨다. 소비자가 원료 성분이나 함량을 일일이 따지지 못하니 같은 값에 질 떨어지는 제품을 팔아 소비자에게 가격 인상 부담을 떠넘긴다.

 

인플레이션 시대에는 내 소득보다 물가가 더 빨리 뛰니 가만 앉아 돈이 줄고 가난해진다.

프랑스 대형 유통업체가 슈링크플레이션기업 명단까지 공개하는 것은 원가 상승 핑계로 터무니없이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기업에 가격을 낮추라고 압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슈링크플레이션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소비자는 알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