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75주년에 돌아보는 우리나라 위기의 순간 2
1. 유엔의 대한민국 정부 승인
1948. 8. 15 건국되고 한 달,
1948. 9. 21 유엔 제3차총회가 파리에서 열렸다.

이승만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유엔에서 우리나라가 신생국가로 승인받는 것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장면을 대표단장에 임명하였다.
그의 유창한 영어실력과 가톨릭신자인 점이 여러 가톨릭 국가들의 지지를 얻어내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장면을 수석대표로 하여 조병옥 장기영 정일형 김활란 모윤숙 등 대표단이 파견되었다,
한편 9. 9 건국을 선언한 북한도 대표단을 파견하였으나 그 대표단은 파리공항에서 입국을 거절 당하였다.
유엔총회의 대한민국의 승인 안건은 소련 대표 비신스키가 필리버스터 전략으로 장광설을 쏟아내며 독설로 회의를 훼방하여 표결은 계속 연기되었다.
12월로 접어들어 총회는 폐막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지칠대로 지치고 허탈해진 한국대표단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총회 마지막 전날 저녁, 대표들이 장면 박사의 방으로 모였다.
장면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제안하여 모두 철야기도를 하도록 하고
자신은 새벽 3시에 성당으로 가서 하나님께 새벽기도를 드렸다.
모윤숙도 따랐다.
드디어 총회 마지막 날 12월 12일..
총회는 속개되었다.
비신스키가 역시 기세 좋게 등단하여 방해 발언을 이어갔다.
대한민국 승인건은 이날까지 통과되지 못하면 무효가 되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독설을 퍼붓던 비신스키가 갑자기 목이 메는 듯,
눈을 번득거리고 팔을 휘저으며 쓰러졌다.
감기와 치통이 도진 것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마침내 표결이 시작되었고
당시 55개 회원국 가운데
찬성 48대 반대 6, 기권1표(스웨덴)의 절대적인 지지로 통과되었다.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임을 승인하는 순간이었다.

<조선일보 호외 12월 13일>
대한민국 정부 승인안
UN총회 48대6으로 가결
[파리 13일발 AP합동] 유엔총회는 어제 12일 소련의 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대한민국을 승인하는 동시에 유엔한국위원단을 금후 1년간 존속케하는 것을
48대6 기권1(스웨덴)로 표결하고 폐회하였는데
신위원단은 카나다의 수정안으로 7개국(오스트레일리아 중국 엘살바돌 프랑스
인디아 필리핀 및 시리아)으로 구성하기로 되었다.
한편 한국위원단을 폐지하자는 소련 결의안은 46대6으로 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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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엔의 한국전 파병 결정
1950년 6월 25일 새벽, 김일성의 북한군이 남한을 침공하고 이틀 뒤,
6월 27일 유엔에서는 안전보장이사회가 긴급 소집됐다.
미국은 한국에 유엔군 파병을 제의했고 영국은 가장 먼저 지지 의사를 밝히며
“유엔 회원국들은 한국에서 침략을 격퇴하고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군사원조를 제공한다”는 결의안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정되었다.
안보리 11국 중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대만) 쿠바 에콰도르 노르웨이가 찬성하였고
유고슬라비아가 반대했으며 이집트와 인도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고,
상임이사국 소련은 회의에 불참했다.
당시 소련의 대표는 대만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에 불만을 품고 결석하였다.
그래서 한국전 관련 결의가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없이 통과될 수 있었다.
안보리 결의에 따라 16개 유엔회원국들이 한국에 군대를 파병한 나라는 16개국이었다.
북미 2개국(미국, 캐나다),
남미 1개국(콜럼비아),
아시아 4개국(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아프리카 2개국(남아공화국, 에티오피아),
유럽 7개국(영국, 벨기에, 프랑스, 그리스, 룩셈베르그, 네덜란드, 터키)이다.
